택당이 승려를 만나 역리를 논하다(澤堂遇僧談易理)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1647)은 젊어서부터 병이 많아 과업(科業)을 폐하고 오로지 병 조리하기를 일삼았다. 집이 지평(砥平) 백아곡(白鴉谷)에 있었는데 용문산(龍門山)이 가까운지라 일찍이 『주역(周易)』을 가지고 용문사(龍門寺)에 이접(移接, 옮겨 머묾)하여 역리(易理)를 깊이 연구하였다. 한 승려가 나무를 져 생계를 이었는데 해진 장삼 하나와 바리때 하나뿐이라 절 안의 여러 승려들이 사람 축에 끼워 주지 않았다. 공이 매양 밤이 깊도록 등불을 마주하여 부지런히 글을 읽으니 여러 승려들은 모두 자되 부목승(負木僧)은 홀로 남은 불빛을 빌려 짚신을 삼으며 자지 않았다. 어느 날 공이 문의(文義)를 궁구하기를 매우 고심하여 날이 새기에 이르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