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야로 물러난 정 지돈녕이 복을 누리다(退田野鄭知敦享福) 양파(陽坡) 정태화(鄭太和, 1602~1673)의 선친인 지돈녕공 정광성(鄭廣成, 1576~1654)이 수원 상부촌에서 퇴로하였는데, 양파는 장자로서 벼슬이 수상의 자리에 있은 지 수십 년이었다. 양파의 장자 참의공 정재대(鄭載岱, 1628~1709)가 대신 좌우에서 모시며 동정을 살펴 봉양을 극진히 하였다. 이 공의 천성이 검소하여 덮던 이불이 오래되어 더럽고 해어졌는데, 일찍이 참의공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은 뒤 소렴(小斂)은 이 이불로 하라.” 하였다. 깔고 앉는 요가 해지면 늘 한쪽으로 옮겨 앉고 비자로 하여금 해진 곳을 기우게 하였으며 자제들을 교훈하기를 매우 엄하게 하였다. 그중 둘째 아들 좌의정 정치화(鄭致和, 1609~1677)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