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전체 글 153

아버지 그 집 아니에요~~ (청구야담 가람본 10-8)

산골 백성이 남의 축문을 잘못 읽다(峽氓誤讀他人祝)  한 재상의 자제가 부친상을 당하여 삼년상을 마치고, 일찍이 일을 인하여 산골로 가다가 날이 저물고 주막이 먼지라 한 민가에 묵기를 청하였다. 그 집에서는 바야흐로 개와 돼지를 잡아 많이 요리하고 있었다. 공자(公子, 재상의 아들)가 그 까닭을 물으니 그날 밤이 주인의 제삿날이었다. 밤이 깊도록 훤요(喧擾, 시끄럽고 떠들썩함)하여 눈을 붙이지 못하였는데, 닭이 울 무렵에는 떠드는 소리가 전보다 열 배나 하고 제수를 차리는 그릇 소리가 귀를 요란하게 하였다. 마침내 독축(讀祝, 축문을 읽음)할 때 축사에 말하기를, “유세차(維歲次) 계유년 5월 20일이라.” 하니 공자가 누워 듣고 웃으며 말하기를, “오늘은 갑술년 5월 16일이거늘 어찌 작년 오월로 독축..

두 사람은 문제아지만 최강, 차천로와 한석봉 이야기 (청구야담 가람본 10-6, 10-7)

차 오산이 병풍을 사이에 두고 백운을 부르다(車五山隔屛呼百韻)  차오산(車五山) 천로(天輅), 곧 차천로(車天輅, 1556~1615)는 문장과 시가 한 시대에 유명하여 비록 정교함과 거침이 서로 섞였으나 즉석에서 만언(萬言)을 지어내고 흥이 도도하여 궁진하지 아니하니 세상에 감히 대적할 자가 없었다. 선조 말년에 천사(天使,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 1558~1624)이 조선에 나오니 주공은 본래 풍류 있는 남자로 강남의 재사(才士)라 이르는 곳마다 사한(詞翰, 시문과 글씨)이 빛나 천하에 회자되니 조정에서 빈사(儐使, 사신을 접대하는 관원)를 특별히 가려 뽑았다.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 1564~1635)를 접반사(接伴使)로 삼고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 1571~1637)을 접위관(接慰..

잘린 목에서 흰 피가 나온 기인 이광희 (청구야담 가람본 10-5)

이 상사가 병으로 인해 도의 묘함을 깨닫다(李上舍因病悟道妙)  진사 이광희는 예로부터 고질이 있어 방서(方書, 의서)를 널리 상고하다가 문득 묘술(妙術)을 깨달아 기이한 일이 많았다. 늘 냉수를 마시고 한 등의(藤椅, 등나무 의자)를 대청 위에 두고 누워 구르기를 여러 차례 하고 몸을 높은 데 거꾸로 달아 물을 토하여 위장을 세척한다고 일렀다. 또 일찍이 멀리 나가 놀 때 홀연 뻣뻣이 죽었다가 수일 후 도로 깨어나더니, 어느 날 집안사람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 이제 멀리 가서 한 달이 넘은 뒤 돌아올 터이므로 한 친한 벗을 청하여 내 몸을 대신하여 지킬 것이니 반드시 잘 대접하라.” 말을 마치자 기절하였다. 식경(食頃, 밥 한 끼 먹을 동안)에 다시 살아 일어나 앉아 그 아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그대..

역리를 깨달은 승의 예언으로 화를 피한 이식(청구야담 가람본 10-4)

택당이 승려를 만나 역리를 논하다(澤堂遇僧談易理)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1647)은 젊어서부터 병이 많아 과업(科業)을 폐하고 오로지 병 조리하기를 일삼았다. 집이 지평(砥平) 백아곡(白鴉谷)에 있었는데 용문산(龍門山)이 가까운지라 일찍이 『주역(周易)』을 가지고 용문사(龍門寺)에 이접(移接, 옮겨 머묾)하여 역리(易理)를 깊이 연구하였다. 한 승려가 나무를 져 생계를 이었는데 해진 장삼 하나와 바리때 하나뿐이라 절 안의 여러 승려들이 사람 축에 끼워 주지 않았다. 공이 매양 밤이 깊도록 등불을 마주하여 부지런히 글을 읽으니 여러 승려들은 모두 자되 부목승(負木僧)은 홀로 남은 불빛을 빌려 짚신을 삼으며 자지 않았다. 어느 날 공이 문의(文義)를 궁구하기를 매우 고심하여 날이 새기에 이르렀..

국수로 불린 인간 (청구야담 가람본 10-3)

덕원령이 바둑으로 이름을 떨치다(德原令擅名棋局)  덕원령(德原令)은 바둑을 잘 두어 국수(國手, 한 나라를 대표할 정도의 바둑 최고수)로 이름이 자자하더니 어느 날 한 사람이 말을 뜰에 매고 문안하거늘 덕원령이 묻기를, “누구냐?” 하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소인은 향군(鄕軍)으로 상번(上番)하러 올라왔고 평생 바둑 두기를 좋아하였는데, 노야께서 국수라는 말씀을 듣고 한 판 대국하려 합니다.” 하였다. 덕원령이 흔연히 허락하거늘 그 사람이 마주 앉아 문득 말하기를, “대국에는 내기를 하지 않을 수 없으니 노야께서 지시면 석 달 양식을 대어 주시고, 소인이 지면 소인이 말에 벽(癖)이 있어 매어 둔 말이 준마이오니 드리기를 원합니다.” 하였다. 덕원령이 말하기를, “그리하라.” 하였다. 이미 승부를 겨루매..

올곧은 사람, 이후종 (청구야담 가람본 10-2)

이후종이 힘써 효의를 행하다(李後種力行孝義)  이후종(李後種)은 청주(淸州)의 수군(水軍)이라. 신의(信義)가 향리에 드러났는데, 동리에 사는 사인(士人, 선비)이 수사(水使)에게 편지하여 후종의 천역(賤役)을 면하게 해 주고자 하였다. 후종이 사인에게 뵙고 말하기를, “듣자오니 생원께서 수사께 간청하여 소인의 천역을 면하고자 하신다 하오니 과연 그러하십니까?” 하니 말하기를, “그러하다.” 후종이 말하기를, “옳지 않습니다. 나라의 군역을 소인 같은 젊고 힘센 자가 만일 모면한다면 어찌 군액(軍額, 군역을 부담할 인원)을 채우겠으며, 하물며 저는 소민(小民)이라 역이 없을 수 없으니 원컨대 그만두십시오.” 하고 육십이 넘도록 응역(應役, 군역에 응함)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숙부가 나이 늙고 처자..

은 나와라와라 뚝딱 마술 표주박 (청구야담 가람본 10-1)

남편을 고른 지혜로운 여종이 사람을 알아보다(擇夫婿慧婢識人)  옛날 한 참정(參政)이 훤당(萱堂, 어머니)을 모셔 봉양하려는 뜻이 간절하였으나 공무가 다단하고 사무가 한데 몰리는 일이 많아 늘 곁에서 모실 겨를이 없었다. 집안에 한 여종이 있었는데 나이가 삼오(三五, 열다섯)에 이르고 용색이 풍염하며 성품도 총명하고 지혜로워 대부인의 뜻을 잘 받들어 굶주림과 배부름, 추위와 더위의 마땅함을 따라 받들고 좌우로 움직이고 쉬는 때의 기미를 살펴 부축하였다. 대부인은 이로써 편안하고 참정은 이로써 어버이의 마음을 기쁘게 하며 집안사람들은 이로써 수고를 대신하게 하니 참정이 매우 사랑하여 상을 주는 일이 그치지 않았다. 이 여종은 행랑 밖에 따로 한 방을 두어 서화와 집물(書畫什物)을 매우 선명하게 갖추어 놓고..

협녀 가련 (청구야담 가람본 9-20)

종신을 의탁한 여협이 목숨을 버리다(托終身女俠捐生)  이 참판의 이름은 광덕(李匡德, 1690~1748)이요 별호는 관양(冠陽)이라. 일찍이 왕명을 받들어 북관(北關)에 암행할 때 종적을 감추고 갖은 고난을 겪어 수령의 장부(臧否, 잘잘못)를 염탐하며 백성의 폐막(弊瘼, 폐단과 고통)을 채득하더니 장차 함흥(咸興)에 이르러 자취를 드러내고자 하여 종자 몇 사람과 더불어 저물게 성내에 들어가니 온 성의 인민이 창황히 분주하여 말하기를, “수의(繡衣, 암행어사)가 장차 이른다.” 하거늘 이공이 의아하여 말하기를, “한 도를 두루 행하되 나를 아는 자가 없더니 이제 이렇듯 훤괄(喧聒, 떠들썩함)하니 혹 종인의 누설함인가?” 의심하고 도로 성 밖에 나와 모든 추종을 힐문하되 끝이 없는지라. 수일 후 다시 성내에..

소설책을 잘 읽던 이업복 (청구야담 가람본 9-19)

가인을 잃고 거듭 박복함을 한탄하다(失佳人數歎薄倖) 이업복(李業福)은 겸종(傔從)의 무리였다. 어려서부터 소설책을 잘 읽었는데, 그 소리가 혹 노래 같고 혹 원망하는 듯하며 혹 웃는 듯하고 혹 슬픈 듯하였다.혹 호방하여 걸사(傑士)의 형상을 짓고 혹 완미하여 미인의 자태를 짓기도 하니, 대개 그때 읽는 책의 장면을 따라 각각 그 능함을 보였다.당시 부호들은 모두 그를 불러 들었는데, 한 서리 부부가 그 재주를 몹시 좋아하여 업복을 먹여 기르고 대접하기를 친족처럼 하여 통가(通家)의 의를 허락하였다.서리에게 딸 하나가 있었는데 성품이 단정하고 유순하며 자색이 빼어나 천태만상으로 천고절염(千古絶艶)이었다.업복은 마음이 미혹되고 정신이 흔들려 능히 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매양 눈짓으로 뜻을 전하였으나 그 여자는..

곽향정기산 세 첩. (청구야담 가람본 9-18)

연운으로 처방한 이인(投良劑病有年運) 동현(銅峴)에 큰 약국이 있었는데, 어느 날 한 늙은 선비가 해진 옷과 짚신 차림으로 홀연히 들어와 한 모퉁이에 앉아 한마디도 하지 않고 날이 기울도록 가지 않았다.주인이 괴이하게 여겨 묻기를,“어느 곳 손님이신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하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내가 어떤 객과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으므로 와서 지금 기다리고 있으니, 이 약국에 오래 머무는 것이 미안합니다.”하였다.주인이 말하기를,“무엇이 미안하겠습니까?”하였다.이윽고 주인이 저녁밥을 권하니 그 사람이 응하지 않고 곧바로 문밖으로 나가 밥집에서 밥을 사 먹고 다시 와 전처럼 앉아 있기를 여러 날이었으나 기다리던 손님은 보지 못하였다.주인이 의아하게 여겼으나 또한 박절하게 물리치지 못하였다. 문..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