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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글 144

곽향정기산 세 첩. (청구야담 가람본 9-18)

연운으로 처방한 이인(投良劑病有年運) 동현(銅峴)에 큰 약국이 있었는데, 어느 날 한 늙은 선비가 해진 옷과 짚신 차림으로 홀연히 들어와 한 모퉁이에 앉아 한마디도 하지 않고 날이 기울도록 가지 않았다.주인이 괴이하게 여겨 묻기를,“어느 곳 손님이신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하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내가 어떤 객과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으므로 와서 지금 기다리고 있으니, 이 약국에 오래 머무는 것이 미안합니다.”하였다.주인이 말하기를,“무엇이 미안하겠습니까?”하였다.이윽고 주인이 저녁밥을 권하니 그 사람이 응하지 않고 곧바로 문밖으로 나가 밥집에서 밥을 사 먹고 다시 와 전처럼 앉아 있기를 여러 날이었으나 기다리던 손님은 보지 못하였다.주인이 의아하게 여겼으나 또한 박절하게 물리치지 못하였다. 문..

이 종이가 니 종이냐? (청구야담 가람본 9-17)

청주 수령이 꾀를 써 도둑을 잡다(淸州倅權術捕盜) 이지광(李趾光)은 선치하는 수령으로 이름이 자자하여 송사를 결단함이 귀신같았는데, 청주에 도임하자 한 중이 들어와 하소연하기를, “소승이 종이를 팔아 생업을 삼고 있었는데 오늘 장시에 백지 한 덩이를 지고 저자 곁에서 쉬다가 잠깐 짐을 벗어 놓고 소변을 보고 즉시 돌아보니 종이 짐이 간 곳을 알 수 없었습니다. 사방으로 찾았으나 끝내 얻지 못하였으니 엎드려 빌건대 신명하신 수령께서 찾아 주십시오.” 하였다. 관가에서 말하기를, “네가 간수하지 못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잃었으니 비록 찾아주고자 하나 장차 어느 곳에 가서 묻겠느냐? 번거롭게 하지 말고 물러가라.” 하였다. 이윽고 다른 일로 행차를 명하여 십 리 밖에 갔다가 저물녘 아종(衙從)들과 돌아올 때 길..

[사용기] RG DS를 정리한 이유(ft. RG DS Plus 공개)

나에게 가장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 콘솔이 무엇이냐고 한다면,닌텐도 DS라고 답할 수 있다.정확히는 NDSL(닌텐도 DS Lite) 어릴 때 가장 많이 가지고 놀았던 게임기이기도 하고,지금도 종종 DS 게임을 다시 찾아서 플레이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엔버닉에서 듀얼 스크린을 달고 나온 RG DS를 공개했을 때부터이건 나오면 무조건 사야겠다고 생각했다.상하 동일한 크기의 기기라는 점에서그리고 가볍다는 점에서토르가 채워주지 못하는 DS 에뮬 플레이에서의 아쉬움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제품이 나오고 보니 조금 애매했다.DS를 돌리기 위한 기기인데 성능이 썩 좋지 않았고,초기 소프트웨어의 완성도 역시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한동안 지켜보기만 하다가ROCKNIX..

테크/리뷰 2026.09.05

아내의 탈룰라 (청구야담 가람본 9-16)

관서백이 역마에 기생을 태워 보내다(關西伯馹騎馳妓) 양녕대군은 세종의 형님이다. 일찍이 말미를 받아 관서로 유람하러 갈 때 세종이 작별에 임하여 거듭 여색을 경계하니 대군이 공경히 사례하고 갔다. 임금이 관서 도신에게 명하여, “대군이 만일 가까이하는 기생이 있거든 즉시 역마에 태워 올려 보내라.” 하였다. 대군이 성교를 받들어 여러 고을에 엄히 명하여 기생들을 물리쳤다. 방백과 수령이 이미 임금의 명을 받았으므로 아름다운 기생을 구하여 온갖 방법으로 유혹하게 하였다. 대군이 정주에 이르니 청산녹수 사이에 대숲이 있고, 대숲 사이에 몇 칸의 정사가 있는데 한 미인이 소복 차림으로 어슴푸레한 가운데 있어 슬피 우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니 사람의 간장이 녹을 듯하고, 반쯤 드러난 화용월태(花容月態)를 가까이 ..

관을 통해 범인을 잡은 개 (청구야담 가람본 9-15)

관청 뜰에서 짖은 의로운 개가 주인에게 보답하다(吠官庭義狗報主) 영남 하동 땅에 한 수절한 과부가 있어 다만 어린 딸과 어린 여종 하나와 함께 살았는데, 어느 날 밤 이웃에 사는 모갑(某甲, 아무개)이 담을 넘어 잠자는 방에 들어와 겁박하려 하자 과부가 죽기로 막으니 모갑이 칼을 빼어 과부와 그 딸 및 여종을 모두 죽이고 갔다.그 집에 다른 사람이 없으니 누가 알겠는가. 세 구의 시신이 방에 있었으나 지극한 원통함을 풀어 줄 이가 없었다.관문 밖에 홀연히 한 개가 오락가락하며 뛰어 놀기에 문을 지키던 사령이 쫓으니 잠깐 피하였다가 도로 와 이와 같이 하기를 여러 번이었다.관가에서 이를 듣고 그 모습을 기이하게 여겨 가는 대로 두라 하니 그 개가 곧바로 관문 안으로 들어와 동헌 앞에 이르러 머리를 들고 거..

사대부와 민간 신앙의 대결 (청구야담 가람본 9-14)

음사를 헐자 사귀가 목숨을 빌다(毁淫祠邪鬼乞命) 경상도 조령 위에 한 총사(叢祠)가 있었는데 자못 영험하였다. 전후의 관찰사로 이 고개를 넘는 자는 반드시 가마에서 내려 절하고 돈을 거두어 이 신당에서 굿을 하고 지나갔는데,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재앙이 있었다. 한 방백은 천성이 강직하고 굳세어 일찍이 화복으로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는데, 그가 임소로 갈 때 길이 총사 아래를 지나게 되었다. 장교와 아전들이 일제히 나아가 뵙고 전례를 아뢰었는데, 그 방백은 요망하고 허탄하다며 물리치고 쌍교를 몰았다. 일 리도 가지 못하여 과연 큰 바람과 급한 비가 경각 사이에 진동하니 종인들이 크게 두려워하였다. 방백이 분노하여 추종들에게 사우를 불지르게 하며, 명을 어기는 자는 죽음을 면하지 못하리라 하니 무..

목소리만 듣고도 수명을 알아채는 의사 (청구야담 가람본 9-13)

죽을 때를 알아맞힌 신 주촌이 음성을 알아보다(識死期申舟村知音) 신만(申曼, 1620~1669)의 자는 만천(曼倩)이니 의술이 신명하여 병자를 한 번 보면 그 생사를 알았다. 세시를 맞아 그 고모에게 세배하러 갔는데 고모는 이부제학 이지항(李之恒, 1605~1654)의 부인이었다.마침 이씨 집안의 한 사람이 세배하러 와 부인은 문을 향하여 앉고 손님은 대청 위에 앉아 있었다.만천이 방 안에서 손님이 그 고모와 수작하는 소리를 듣고 방 안에서 소리를 높여 말하기를,“손님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하나 금년 사월에 마땅히 죽을 것이다.”하였다.그 고모가 설날 아침의 불길한 말을 민망히 여겨 꾸짖어 말하기를,“이 아이가 미쳤느냐?”하고 손님을 위로하여 말하니 손님은 그의 성명을 알고 있었으므로 다만 억지로 웃으며 ..

조선시대 성공신화 이야기 (청구야담 가람본 9-12)

전야로 물러난 정 지돈녕이 복을 누리다(退田野鄭知敦享福) 양파(陽坡) 정태화(鄭太和, 1602~1673)의 선친인 지돈녕공 정광성(鄭廣成, 1576~1654)이 수원 상부촌에서 퇴로하였는데, 양파는 장자로서 벼슬이 수상의 자리에 있은 지 수십 년이었다. 양파의 장자 참의공 정재대(鄭載岱, 1628~1709)가 대신 좌우에서 모시며 동정을 살펴 봉양을 극진히 하였다. 이 공의 천성이 검소하여 덮던 이불이 오래되어 더럽고 해어졌는데, 일찍이 참의공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은 뒤 소렴(小斂)은 이 이불로 하라.” 하였다. 깔고 앉는 요가 해지면 늘 한쪽으로 옮겨 앉고 비자로 하여금 해진 곳을 기우게 하였으며 자제들을 교훈하기를 매우 엄하게 하였다. 그중 둘째 아들 좌의정 정치화(鄭致和, 1609~1677)가..

모욕? 오히려 좋아 (청구야담 가람본 9-11)

채 사자가 분발하여 힘써 배우다(蔡士子發憤力學) 영광 땅에 채씨 성의 한 사인이 있어 과거 공부를 부지런히 하였으나 끝내 이룬 바가 없었고 만년에 외아들을 두었는데 다시 글을 가르치지 아니하고 다만 성장하여 대를 잇기만 바라더니 그 아들이 미처 자라지 못하여 사인이 죽었다. 그러나 가세는 넉넉하여 외아들이 무식하였으나 능히 세업을 지켰다. 어느 날 동리의 풍헌(風憲)이 와 관가의 전령을 보여 주고 그 뜻을 물었는데 채생이 받아 한참 보다가 땅에 던지며 말하기를, “알지 못하겠소.” 하였다. 풍헌이 말하기를, “사자(士子)라 이름하면서 한 글자도 알지 못하니 저러한 사자는 견양(犬羊)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니 채생이 부끄럽고 통한함을 이기지 못하여 감히 한마디도 하지 못하였다. 이때 채생의 나이가 사십..

아내의 배신으로 이인이 된 문유채(청구야담 가람본 9-10)

문유채가 출가하여 벽곡하다(文有采出家辟穀) 문유채는 상주 사람이다. 일찍이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삼 년 동안 시묘하면서 발자취가 문에 이르지 않았는데, 복을 벗은 뒤에야 비로소 집에 돌아오니 아내 황씨가 행실을 잃어 딸 하나를 낳아 놓았다. 문생이 내치자 황씨는 그대로 피하여 달아났는데, 황씨의 친족들이 문생이 죽인 것인가 의심하여 관가에 고하였다. 관리가 잡아 힐문하였으나 그 실상을 알아내지 못하여 칠 년 동안 옥에 갇혀 있었다. 조 상서 정만이 상주목사가 되었을 때 그 원통하고 억울함을 알고 황씨를 찾아 붙잡아 장문(杖問)하여 죽이니 문생이 비로소 풀려났다. 문생은 출가하여 산사에 깃들고 벽곡법(辟穀法)을 행하여 십여 일 동안 먹지 아니하다가도 한 번 먹으면 문득 오륙 승이나 먹었으며 걸음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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