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가람본 청구야담

아내의 배신으로 이인이 된 문유채(청구야담 가람본 9-10)

주인 미상 2026. 9. 2.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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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채가 출가하여 벽곡하다(文有采出家辟穀)

 



문유채는 상주 사람이다. 일찍이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삼 년 동안 시묘하면서 발자취가 문에 이르지 않았는데, 복을 벗은 뒤에야 비로소 집에 돌아오니 아내 황씨가 행실을 잃어 딸 하나를 낳아 놓았다.

문생이 내치자 황씨는 그대로 피하여 달아났는데, 황씨의 친족들이 문생이 죽인 것인가 의심하여 관가에 고하였다.

관리가 잡아 힐문하였으나 그 실상을 알아내지 못하여 칠 년 동안 옥에 갇혀 있었다.

조 상서 정만이 상주목사가 되었을 때 그 원통하고 억울함을 알고 황씨를 찾아 붙잡아 장문(杖問)하여 죽이니 문생이 비로소 풀려났다.

 

 

문생은 출가하여 산사에 깃들고 벽곡법(辟穀法)을 행하여 십여 일 동안 먹지 아니하다가도 한 번 먹으면 문득 오륙 승이나 먹었으며 걸음이 나는 듯하여 날마다 사백 리를 걸었다.

한 벌의 홑옷으로 여름과 겨울을 늘 지내되 더위와 추위를 알지 못하고 항상 나막신을 신고 사방을 두루 돌아다녔으나 옥 같은 얼굴빛은 일찍이 변하지 않았다.



경술년 겨울에 해주 신광사(神光寺)에 이르렀는데 눈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문생은 홑옷을 입었으나 조금도 추워하는 기색이 없었고 저녁밥을 대접하여도 먹지 아니하고 밤을 찬 땅에서 지내니 여러 승려가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

이때 눈비가 그치지 않아 삼 일을 머물렀으나 먹지도 않고 졸지도 아니하니 여러 승려가 모두 이인(異人)이라 일컬으며 일제히 나아와 말하기를,

“이 절이 비록 가난하나 어찌 손님 한 분을 받들 음식이 없겠습니까? 생원께서 삼 일을 머무시면서 드시지 않으시니 저희 소승들이 무슨 죄를 지은 것이 있습니까? 듣기를 원합니다.”

하였다.

문생이 웃으며 말하기를,

“나 또한 먹는 양이 많으니 여러 승려가 나를 먹이고자 한다면 각각 한 홉씩 쌀을 내어 밥을 지어 오시오.”

하였다.

승려가 수십 명이라 이에 각각 쌀을 내어 합하니 한 말에 가까웠다. 밥을 지어 내오자 문생이 손을 씻고 밥을 뭉쳐 입에 들이치며 큰 두구리에 든 장을 들어 마셔 한 번에 모두 먹으니 다들 놀라고 괴이하게 여겼다.

문생이 먹기를 마치고 장차 떠나려 하자 수승이 걸음을 잘 걷는 사람을 골라 그 뒤를 밟게 하였다.

문생이 석담서원(石潭書院)에 배알하고 이름을 적으니 비로소 문유채인 줄 알았다. 문생의 걸음이 신속하여 승려가 능히 따라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문생은 평소 평량자(平凉子)를 쓰고 낡은 베옷을 입으며 성품이 고요한 것을 좋아하고 번잡한 것을 싫어하여 궁벽한 곳이 아니면 머물지 않았다.

가을과 겨울 사이에 산꼭대기의 폐사에 올라간 뒤 눈이 쌓이고 길이 막혀 소식이 완전히 끊기니 여러 승려가 모두 말하기를,

“문 처사가 얼어 죽었다.”

하였다.


그러다가 봄이 돌아와 눈이 녹은 뒤 올라가 찾아보니 문생이 홑베 적삼을 입고 낙엽을 깔아 놓은 채 고요히 꿇어앉아 있었는데 안색이 윤택하고 굶주린 기색이 없었다.

홀로 외로운 암자에서 염불하는 소리가 맑고 아름다웠는데, 혹 듣는 사람이 있으면 즉시 그쳤다.

불경에 익숙한 선사가 더불어 의논하고자 하면 다만 말하기를,

“읽을 줄만 알 뿐 불경의 뜻은 모르오.”

하니 그 경지가 얼마나 깊은지 헤아릴 수 없었다.

백화암에 있다가 오래지 않아 마가암으로 옮겨 가 죽었다.

 


 

불가에 인연이 없어 보이던 인물이 출가하여 이인의 행적을 보였음을 이야기하는 이인담이다.

 

출가의 계기는 부모와 아내를 모두 잃고(아내는 처형을 당한 것이지만) 옥에서 고초를 길게 겪었던 일이라 할 수 있겠다.

 

낳아준 부모를 모두 잃은 상황에 더하여, 믿었던(알 수 없지만) 아내의 배신으로 옥에서 칠 년이나 갇혀 있었던 경험이

 

분명 그에게는 큰 변곡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불가적인 이인이라기보다는 신선에 가까운 인물처럼 그려져 있다.

 

밥을 먹는 것, 곡기를 끊는 것, 추위를 타지 않는 것 등 초인적인 신체 능력을 보여준다.

 

동시에 불경을 혼자 암송할 정도로 불교적인 것에도 깊은 조예가 있었던 것으로 그려진다.

 

죽음까지 그려진 것으로 보아,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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