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 총각을 구하여 볏짚더미 속에서 꺼내다(?)(班童倒藏藁草中?)

옛날 한 양반 총각이 있었다. 집안 형편은 기울었고 부모도 모두 세상을 떠나 외로운 몸으로 쓸쓸히 지냈다. 그러나 조금 글자를 알았으므로 늘 본고을 이방(吏房)의 집에 가서 문서 일을 대신 맡아 해 주며 생계를 이어 갔다.
고을 안에는 한 시내가 있었고, 시냇가의 한 민가에 장성한 딸이 있었지만 아직 혼인을 정하지 못하였다. 양반 총각은 전부터 그 여자를 익히 보아 마음으로 흠모하고 있었다.
어느 날 여자의 부모와 친척들이 혼인을 보러 모두 집을 비우고, 여자만 남아 빨래를 하고 있었다. 총각은 여자가 홀로 있다는 것을 알고 몰래 집으로 들어가 뒤에서 허리를 안았다.
그러자 여자가 말하였다.
“내가 도령님의 뜻을 압니다. 나는 본래 상한(常漢)의 여자로서 양반과 혼인하게 된다면 어찌 영화롭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반드시 이렇듯 무례하게 할 것은 아닙니다. 나는 이미 마음으로 허락하였으니, 부모님이 돌아오시기를 기다려 혼인을 의논하고 날을 골라 성례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선 돌아가 기다리십시오.”
총각은 그 말을 옳게 여겨 그대로 돌아갔다.
부모가 돌아오자 여자는 앞서 있었던 일을 알리고 혼인을 의논하였다. 집안에서는 장차 날을 잡아 혼례를 치르려 하였다.
그런데 여자의 외가 쪽 먼 친척 가운데 한 총각이 있었다. 그 역시 여자의 용모를 흠모하여 여러 차례 구혼하였지만, 여자의 집에서는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여자가 양반 총각과 혼인을 약속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양반 총각을 꾀어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손발을 묶고 버선으로 입을 틀어막은 뒤, 짚더미 가운데에 거꾸로 처박아 두었다.
여자는 양반 총각이 보이지 않자 이상하게 여겼다. 먼저 이방의 집을 찾아가 물었으나 그곳에도 없었다.
그러자 크게 의심하여 곧바로 그 친척 총각의 집을 찾아갔다.
“너희 집에서 아무 도령을 어디에 감추었느냐? 속히 내어 보내라.”
그 집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크게 변명하며 오히려 여자를 꾸짖었다. 그러나 여자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집 안팎을 샅샅이 뒤졌다.
끝내 총각을 찾지 못하자 차츰 후정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쌓여 있는 짚더미를 헤쳐 보니, 과연 양반 총각이 그 가운데 거꾸로 처박혀 있었다. 얼굴은 이미 죽은 사람처럼 변해 있었고 숨도 거의 끊어지려 하고 있었다.
여자는 급히 그를 안아 꺼냈다. 먼저 입을 막고 있던 버선을 빼고, 이어 손발을 묶은 것을 풀었다.
그리고 총각을 직접 등에 업어 자기 집으로 데리고 돌아와 눕혔다. 어머니에게 그를 잘 조리시키도록 한 뒤에는 곧바로 관정(官庭)으로 가서 있었던 일을 낱낱이 고하였다.
관가에서는 여자의 행동을 크게 칭찬하였다.
그리고 그 친척 총각을 잡아들여 엄하게 형벌하고 정배(定配)하였다. 또한 두 사람이 혼인할 수 있도록 혼수도 넉넉하게 마련하여 주었다.
마침내 양반 총각과 여자는 부부가 되었다.
이왕 남편감을 할거면, 가난하더라도 양반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시각을 엿볼 수 있다.
더군다나 이 양반은 가난하더라도 놀고 먹는 게 아니라 몸소 스스로 일을 하며 성실하게 지낸 양반이다.
물론, 첫 만남은 전혀 예절에 맞지 않았다. 오히려 양민 여성이 더 예절을 내세우고 있다.
여인은 예절을 방패 삼아 양반을 물리치고, 정식 절차에 따라 혼인을 주도한다.
그렇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평소 자신을 흠모하던 친척 아이가 자기와 혼인하지 않는다고 혼인을 허락한 양반을 납치해서 거의 질식사시키려 했던 것이다.
낌새를 알아챈 여인은 직접 그 친척집을 찾아가 꾸짖든 말든 무시한 채 샅샅이 찾아서 몸소 자기 예비 신랑을 구해낸다.
내외가 철저해야 한다는 정도보다는 권도를 행하여 주도적으로 신랑을 구해낸 것이다.
예절을 지키는 이가 양민댁 여인이고,
양민 아이가 양반댁 아이를 거의 죽이려 하고
양반 아이는 몰락한 채 이방에게 얹혀 사는 등
이리저리 뒤섞인 조선 후기의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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