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청 뜰에서 짖은 의로운 개가 주인에게 보답하다(吠官庭義狗報主)
영남 하동 땅에 한 수절한 과부가 있어 다만 어린 딸과 어린 여종 하나와 함께 살았는데, 어느 날 밤 이웃에 사는 모갑(某甲, 아무개)이 담을 넘어 잠자는 방에 들어와 겁박하려 하자 과부가 죽기로 막으니 모갑이 칼을 빼어 과부와 그 딸 및 여종을 모두 죽이고 갔다.
그 집에 다른 사람이 없으니 누가 알겠는가. 세 구의 시신이 방에 있었으나 지극한 원통함을 풀어 줄 이가 없었다.

관문 밖에 홀연히 한 개가 오락가락하며 뛰어 놀기에 문을 지키던 사령이 쫓으니 잠깐 피하였다가 도로 와 이와 같이 하기를 여러 번이었다.
관가에서 이를 듣고 그 모습을 기이하게 여겨 가는 대로 두라 하니 그 개가 곧바로 관문 안으로 들어와 동헌 앞에 이르러 머리를 들고 거듭 울부짖어 하소연하려는 듯하였다.
관가에서 장교에게 명하여 개를 따라가 보라 하니 그 개가 곧 관문을 나와 한 초가집에 이르렀는데 방문은 닫혀 있고 사람의 소리는 전혀 없었다.
그 개가 장교의 옷자락을 물고 방문을 향하자 장교가 괴이하게 여겨 지게문을 열어 보니 방 안에 세 구의 시신이 있고 피가 흘러 방 안에 가득하였다.
장교가 크게 놀라고 마음이 떨려 급히 돌아와 그 연유를 아뢰었다.
관가에서 검시하려 하여 빨리 달려가 그 이웃에 의막(依幕, 임시 막사)을 치니 바로 모갑의 집이었다.
모갑이 관가에서 자기 집에 임한 것을 보고 마음이 절로 겁나 황급히 피하자 그 개가 곧장 모갑의 앞으로 달려가 모갑을 물어뜯었다.
관가에서 괴이하게 여겨 개에게 묻기를,
“이 자가 네 원수냐?”
하니 개가 머리를 끄덕였다.
관가에서 모갑을 잡아다가 엄히 심문하니 매 한 대도 내리지 않았는데 낱낱이 자복하였다.
즉시 감영에 보고하여 모갑을 죽이고 그 가속을 엄히 형벌하여 정배한 뒤 세 구의 시신을 후히 장사지내니 그 개가 무덤 곁으로 달려가 한바탕 슬피 울부짖고 이어 죽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 개를 무덤 앞에 묻고 비석을 세워 쓰기를,
“의구총(義狗塚)”
이라 하였다.
그 뒤 선산 땅에도 또 의로운 개가 있었는데 그 주인을 따라 밭에 갔다가 그 주인이 저물녘 돌아올 때 깊이 취하여 밭 가운데에 넘어졌다.
마침 불이 일어나 장차 주인이 누운 곳으로 번져 오자 그 개가 즉시 냇가에 가 꼬리를 물에 적셔 그 곁에 뿌리기를 거듭하여 불을 끄고 힘이 다하여 죽었다.
그 주인이 깨어 그 사실을 알고 그 개를 염습하여 묻으니 지금까지 의구총이 있었다.
슬프다. 선산의 개는 주인을 구하고 스스로 죽었고, 하동의 개는 처음에 원통하고 억울함을 관가에 고하고 마침내 원수인 사람을 가리켜 그 원수를 갚았으니, 누가 금수가 무지하다고 이르겠는가.
선산의 개를 보건대 참으로 사람보다 낫도다.
조선시대 의로운 개 이야기 모음.
꼬리로 들판에 불 난 것을 끈 개 이야기는 유명하지만
범인을 잡은 개 이야기는 그리 유명하지 않다.
해당 개가 단순히 물어서 복수를 하지 않고
관가를 통해서 복수를 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인간과 공권력의 힘을 빌려서, 그들의 죽음을 널리 알리고 장례까지 지낼 수 있도록 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금수가 어리석다고 하였지만 저러한 의로운 사례를 보았을 때는 인간보다 낫다고 하는
마지막의 서술자 평 역시 재밌다.
'학문 > 가람본 청구야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 종이가 니 종이냐? (청구야담 가람본 9-17) (0) | 2026.09.05 |
|---|---|
| 아내의 탈룰라 (청구야담 가람본 9-16) (0) | 2026.09.05 |
| 사대부와 민간 신앙의 대결 (청구야담 가람본 9-14) (0) | 2026.09.04 |
| 목소리만 듣고도 수명을 알아채는 의사 (청구야담 가람본 9-13) (0) | 2026.09.04 |
| 조선시대 성공신화 이야기 (청구야담 가람본 9-12) (0) | 2026.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