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장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 콘솔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닌텐도 DS라고 답할 수 있다.
정확히는 NDSL(닌텐도 DS Lite)
어릴 때 가장 많이 가지고 놀았던 게임기이기도 하고,
지금도 종종 DS 게임을 다시 찾아서 플레이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엔버닉에서 듀얼 스크린을 달고 나온 RG DS를 공개했을 때부터
이건 나오면 무조건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상하 동일한 크기의 기기라는 점에서
그리고 가볍다는 점에서
토르가 채워주지 못하는 DS 에뮬 플레이에서의 아쉬움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제품이 나오고 보니 조금 애매했다.
DS를 돌리기 위한 기기인데 성능이 썩 좋지 않았고,
초기 소프트웨어의 완성도 역시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한동안 지켜보기만 하다가
ROCKNIX가 나오면서 이제는 제법 쓸 만해졌다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터쿼이즈 색상으로 구매.
실제로 꽤 잘 사용했다.
그렇지만 쓰면 쓸수록 하나씩 거슬리는 부분이 생겼고,
그게 결국 해결되지 않아 방출하게 되었다.
1. 그래도 RG DS가 좋았던 이유
RG DS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위아래가 동일한 크기(4인치)의 듀얼 스크린이라는 것.
이게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는데,
DS 게임을 에뮬로 플레이하다 보면 생각보다 굉장히 중요하다.
일반적인 16:9 게임기에서도 위아래 화면을 띄워놓고 DS 게임을 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세로로 기기를 들고 플레이하는 게임이나
위아래 화면이 하나로 이어지는 연출이 들어간 게임을 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른 게임기로 하면 몰입이 확 떨어지거나,
어떤 게임은 사실상 정상적으로 즐기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에 비하면 RG DS는 생김새부터 아예 DS다.
두 화면의 크기도 같고 배치도 자연스럽기 때문에
확실히 DS 게임을 하기 위한 전용기라는 느낌이 난다

.
그리고 화면도 각각 4인치라 큼직하다.
NDSi LL과 비슷한 크기의 화면을 사용하면서도
에뮬 특유의 세이브 스테이트나 빨리감기 같은 편의 기능은 그대로 사용할 수 있으니
실기와 에뮬의 중간쯤 되는 묘한 장점이 있다.
가격도 장점이다.
사실 듀얼 스크린 에뮬 게임기로 넘어가면
AYN 토르나 다른 고성능 듀얼 스크린 기기가 있지만,
비싸다.

DS 게임 자체가 그렇게 높은 성능을 요구하는 게임도 아닌데
DS를 하기 위해 그 정도 금액을 써야 하나 싶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RG DS는 꽤 저렴하다.
토르 같은 기기에 비하면 무게도 훨씬 가볍고,
딱 DS 게임을 하기에는 부담이 적다.
OS 선택지가 다양하다는 것도 장점.
특히 ROCKNIX 지원 이후로는
RG DS가 사실상 한 번 부활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사용감이 좋아졌다.

버튼은 또각거리는 클릭감이 강한 편인데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나는 원래 DS Lite(말랑 뻑뻑)보다는 DSi 계열 버튼감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런 듯하다.
아날로그 스틱도 일반적인 스틱이라기보다 조그 스틱에 가까운 느낌인데,
이건 확실히 취향을 탈 듯하다.

그래도 DS 게임을 하다가 급하게 스틱이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다는 정도로 생각하면
내 기준에서는 괜찮았다.
2. 그럼에도 방출한 가장 큰 이유
그렇지만 결국 방출했다.
가장 큰 이유는 단순하다.
DS 게임 구동이 완벽하지 않다.
나는 DS 에뮬레이터로 melonDS를 주력으로 사용하는데
기본적으로 RG DS의 성능이 낮아서 melonDS를 제대로 사용하기 어렵다.
(멜론 DS를 사용하는 이유는 드라스틱보다 여러 기능이 존재하며
계속해서 업데이트도 되고 있고
드라스틱에서는 세이브 오류가 있어서 실행되지 않는 게임이
멜론DS에서는 실행되기 때문)
여기까지만 해도 아쉬운데,
DraStic으로 기본적인 NDS 게임을 돌릴 때도 항상 완벽한 것은 아니다.
게임에 따라 100% 속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버벅이는 경우가 있다.
특히 RG DS로 《젤다의 전설 대지의 기적》을 플레이하면서 이것을 꽤 크게 체감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발열 + 버벅거림
조합이 나타나는데 썩 유쾌하지 않았다.
기기 자체가 뜨끈뜨끈해지는 것도 불쾌한데
게임까지 순간순간 버벅거리니,
DS 게임 하나 하려고 쓰는 기기치고는 스트레스가 있었다.
터치 역시 아쉽다.
원래 DS는 감압식 터치인데 RG DS는 정전식이다.
말 그대로 방식 자체가 다르다.
일반적인 게임에서는 적응하면 그럭저럭 사용할 수 있지만
터치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게임으로 넘어가면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
특히 리듬 게임에서는 단순히 '어색하다' 정도를 넘어서
내가 의도한 대로 조작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DS 전용기를 기대하고 산 입장에서는 꽤 치명적인 부분이었다.
3. 그리고 OS마다 하나씩 부족하다
사실 내가 가장 피곤했던 부분은 이것이었다.
어느 OS를 사용해도 내가 원하는 기능이 하나씩 빠져 있다.
우선 기본 OS.
기본 OS에서는 셰이더를 사용할 수 있어서
RG DS 특유의 애매한 해상도에서 나타나는 화면의 거슬림을 어느 정도 감출 수 있다.
그런데 기본으로 들어 있는 DraStic이 구버전이라
내가 사용하는 SAV 파일을 지원하지 않고 DSV만 지원한다.
(SAV를 사용하는 이유는 실기에서 사용할 때의 용이성을 위해서다.
DSV로 단순히 확장자명만 바꾸면 되지 않냐?
할 수도 있지만 몇몇 게임은 변환 작업을 거쳐야 제대로 작동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처음부터 SAV 파일을 사용하려고 하는 편)
그렇다고 최신 DraStic을 설치하면
이번에는 위아래 두 화면 출력이 정상적으로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GammaOS도 설치해봤다.
GammaOS에서는 최신 DraStic을 사용할 수 있고 SAV도 사용할 수 있다.
오, 그러면 해결 아닌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너무 버벅거렸다.
거기에 안드로이드 특유의 입력 지연까지 느껴져서
리듬 게임은 사실상 하기 어려웠다.

결국 가장 오래 정착한 것은 ROCKNIX였다.
ROCKNIX에서는 조작 지연도 거의 느껴지지 않고
소리가 밀리는 현상도 적다.
동기화가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한 번 제대로 설정해놓으면 비교적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있다.
기본 DraStic이 SAV를 지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Advanced DraStic을 사용하면
이번에는 셰이더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
여기서 RG DS의 단점.
그러니까 비율은 맞지만 정수배에 부합하지 않는 해상도라는 점이다.
그 결과 쉐이더 사용하지 않으면 폰트가 들쑥날쑥하게 보이거나
도트가 뭉개지고 튀어 보이는 게 계속 눈에 들어온다.

결국
기본 OS를 쓰면 이것이 아쉽고,
GammaOS를 쓰면 저것이 아쉽고,
ROCKNIX를 쓰면 또 다른 것이 아쉽다.
어느 것을 선택해도 내 기준에서는 어딘가 삐걱거렸다.
4. 결국 나에게는 애매한 기기였다
물론 이건 RG DS가 나쁜 기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가격을 생각하면 상당히 재미있는 기기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내 환경이었다.
나는 이미 AYN 토르를 가지고 있고,
구형 NDS부터 신형 3DS XL까지 DS 계열 실기도 대부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에뮬의 편의성을 원하면 토르를 쓰면 되고,
DS 특유의 도트와 감압식 터치 느낌을 그대로 즐기고 싶으면
그냥 실기를 꺼내면 된다.
그 사이에서 RG DS가 차지할 자리가 생각보다 좁았다.
무엇보다 DS 게임을 하려고 만든 기기를 사용하면서
버벅거리는지 신경 쓰고,
발열을 신경 쓰고,
OS를 바꿔보고,
DraStic 버전을 바꿔보고,
세이브 파일과 셰이더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으니
문득
내가 왜 DS 게임 하나 하려고 이렇게까지 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방출.
물론 사람마다 기준은 다를 것이다.
10만 원 정도의 기기에 너무 많은 것을 바란다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리눅스 환경을 잘 세팅해두면
NDS부터 PS1 이하까지 두루 돌릴 수 있으니
값싼 올인원 레트로 게임기로서는 충분히 매력적인 제품이다.
특히 다른 DS나 듀얼 스크린 게임기가 없는 사람이라면
이 가격에 이런 형태의 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꽤 큰 장점이다.
다만 나에게는 이미 더 편한 에뮬 기기도 있고,
진짜 DS도 있었다.
그렇다면 굳이 작은 불편을 계속 참으면서
RG DS를 붙잡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좋은 기기인가?
가격을 생각하면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시 살 것인가?
아마 나는 안 살 것 같다.
적어도 지금은.
5. 그러나...

그런데 하필 RG DS를 정리하고 나니 RG DS Plus가 공개되었다.
이번에는 방향이 조금 다르다.
기존 RG DS처럼 안드로이드까지 이것저것 하려는 기기라기보다는
아예 리눅스를 중심으로 DS에 좀 더 집중한 기기에 가깝다.
화면도 기존 4인치 640×480에서 4.3인치 1024×768로 커졌고,
DS의 256×192 해상도를 정확히 4배로 정수배 확대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 RG DS의 화면에서 은근히 신경 쓰였던 부분 하나를 아예 하드웨어로 해결한 셈이다.
거기에 이번에는 터치펜을 본체 안에 수납할 수 있다.
물론 여전히 감압식이 아니라 정전식 터치펜이기는 하지만,
(이걸로 리듬 게임하면 여전히 아쉽다)
DS를 흉내 낸 기기라면서 정작 펜을 따로 들고 다녀야 했던 기존 RG DS보다는 훨씬 그럴듯하다.
현재 알려진 정보로는 기존과 같은 RK3568에 RAM은 오히려 3GB에서 1GB로 줄어든다고 한다.
다만 안드로이드를 버리고 리눅스 위주로 사용하는 기기라면 1GB가 반드시 단점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근데 그래도 젤다의 전설 대지의 기적 같은 타이틀은 버벅이겠지...)
오히려 이것저것 욕심내기보다 그냥 값싼 DS 에뮬 전용기로 방향을 확실히 잡은 느낌에 가깝다.
사실 RG DS를 쓰면서 내가 원했던 것도 결국 이런 쪽이었다.
더 높은 성능이나 안드로이드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DS 게임이 버벅이지 않고,
화면이 깔끔하게 나오고,
터치펜을 바로 꺼내 쓸 수 있고,
OS가 괜히 복잡하지 않으면 됐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RG DS Plus는
어라, 이건 조금 다른데?
싶기는 하다.
이미 RG DS를 한 번 샀다가 방출한 사람이라
또 엔버닉의 DS를 사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1GB RAM의 리눅스 전용기에 가까운 구성,
4배 정수배가 가능한 화면,
그리고 드디어 본체에 들어가는 터치펜.
적어도 이전 RG DS보다는
내가 원했던 DS 전용기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리하여,
살 생각은 없는데
살짝 궁금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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