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감정의 산물이다. 그 기저에는 인간이 느끼고, 감당하지 못하고, 이해하려 애쓰는 감정이 있다. 하지만 예술을 연구하는 일은 전혀 다르다. 예술학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와 맥락을 본다. 기법, 시대성, 문맥, 수사적 장치, 의미망의 확장 가능성 같은 요소들을 분석해 작품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밝혀내려 한다.
그래서 예술 연구자는 감동을 느끼는 자가 아니라, 감동의 원인을 분석하는 자가 된다. 작품에 울컥해도, 그 이유를 말하지 않으면 연구가 되지 않는다. 눈물을 흘려도, 그 감정은 논문의 각주가 되지 못한다. 감동은 연구를 촉발할 수는 있어도, 결코 논증이 되지는 않는다.
이 지점에서 AI의 등장은 강한 충격을 준다. 왜냐하면 AI는 감동 없이도 예술을 완벽히 해석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AI는 수천 편의 문학 텍스트를 비교해 특정 문체의 변화 추이를 보여주고, 특정 작가가 쓰는 상징어의 분포를 분석해낸다. 수치와 통계, 상관관계를 바탕으로 예술을 ‘구조적으로’ 완전히 분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술 분석은 AI가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이 된 걸까? 기능적으로는 맞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하며,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질문하게 된다. 우리는 예술을 왜 연구하는가?
예술학은 단순히 ‘무엇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왜 지금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필요한가’를 묻는 학문이다.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삶과 맞닿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감각이 중요하다. AI는 해석은 할 수 있지만, 질문은 잘 던지지 못한다. 문제를 만드는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존재의 흔들림이다.
결국 예술학은 감동 위에서 태어났고, 감동과의 거리를 통해 자라난다. 우리는 감동을 제거한 채 예술을 다룰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감동을 경험하지 못한 존재가 그것을 진짜로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감동 없는 해석은 작동할 수 있지만, 그것은 작동하는 언어이지, 살아 있는 언어는 아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감정 없는 해석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에 예술을 연구한다는 것은, 여전히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존재로서의 마지막 저항일까?
(※ 이 글은 AI와의 대화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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